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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사랑의 흔적

by da2namic 202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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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은 흘러가며 그 자취와 흔적을 남긴다.

 

얇은 나무 모종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가며 많은 흔적들을 남긴다.

뿌리는 깊어져가며 주변 땅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가지는 쭉쭉 자라나 하늘을 덮으며 그들을 만들고

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은 우수수 떨어져 땅과 생태계의 양분을 공급한다. 

그리고 그 열매나 몸통은 다양한 필요에 사용되고

나무가 잘려나간 그 자리는 쉼을 주는 자연의 의자가 되어준다.

 

우리는 '슬픔' 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이겨내기 너무 힘들고 버겁고 두려운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슬픔이 그 자체로써 탄생한 주체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의 진행되는 과정 중의 하나의 흔적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위 나무의 성장과 사라져가는 과정 중의 한 결과물 이라면

예를 들어 떨어지는 나뭇잎이라면

잘 익은 과실이라면

과연 그래도 '슬픔'이 피하고 싶기만한 두려운 존재일까?

슬픔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슬픔을 느끼기위해선 선행되어야할 전재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 선행조건은 바로 '사랑'이다.

즉, 슬픔은 사랑의 결과물이요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또 다른 경험인 것이다.

 

사랑을 했다는 혹은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가 바로 슬픔인 것이다.

 

슬픔은 사랑의 한 과정이다.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슬픔이란 가슴 아픈 감정을 느낄 정도로

가슴 깊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새겨질 정도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란 감정에 마냥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 큰 슬픔을 느낄 정도의 사랑을 했다는 혹은 받았다는 것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란 감정은 살아가는 삶속에서

영원히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사라지지 않는 세포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상실에서 오는 슬픔

영원한 단절이 아니며 사랑이 내안에 새겨지는 따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타투를 새길 때, 잠깐의 아픈 인내를 거쳐

평생 내 몸에 근사한 시그니쳐가 되어가는 것과 같이.

 

누구도 슬픔을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 닥쳐온 슬픔에 무너지고 지배되고 스스로를 상실할 필요는 없다.

 

슬픔의 출처를 생각해보라.

그 슬픔이 어디서 온 것인지

어떤 행복에서 온 것인지, 어떤 사랑에서 온 것인지

 

당신에게 주어진 슬픔은

당신이 한 사랑이라는 것의 결과물이란 걸 알자.

그리고 슬픔이 클수록

그 사랑이 컷음을 알자.

 

이제 당신에게 주어진 슬픔속에서

작은 감사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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